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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전문 지식

열역학도 모르는 인문학자들은 왜 과학자들에게 유독 인문학을 요구하는걸까

by 그로잉타임즈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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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과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스노snow는 1959년 한 강연에서 과학자와 인문 지식인들 사이에 나타난 간극에 대해 지적했다. 그의 비판은 셰익스피어는 누구든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열역학 제2법칙이 뭔지도 모르는, 과학에 무지한 당시 영국의 인문지식인들을 향한 것이었다. 이후 책으로 출판된 스노의 두 문화와 과학혁명은 과학과 인문학, 과학자와 인문 지식인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 그 자체를 문제시할 때 인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에서부터 문과/이과를 가르는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자리에서도 자주 언급되곤 했다.

찰스 퍼시 스노우

최근 융합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스노의 '두 문화' 다시 조명받고 있다. '두 문화'는 과학자와 인문 지식인들 사이의 간극에 주목하고 있지만, 융합을 강조하는 최근 추세에서는 과학과 인문학 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과학 내에서도 서로 다른 분야들 간의 협력과 융합을 강조한다.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현재의 과학과 다른 분야 간 융합의 양상을 다양하게 보여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이 철학이나 예술, 그리고 사회 전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오늘날과 같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기 전의 모습을 보면서, 즉 과학이 오늘날과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과학이란 학문을 알고, 그럼으로써 현대과학과 다른 학문 간 융합의 필요성을 이해해보려고 한다.

 

흔히 과학 하면 먼저 양자역학, 상대론, 원자론 같은 이론들을 떠올리기 쉽다. 또 실험실에서 흰 가 운을 입고 실험하는 과학자의 모습을 생각하기도 한다. 꽤 많은 과학자들이 대학 때의 실험 수업 이후로는 실험 가운을 걸치지 않고 사는데도 말이다. 수학도 과학하면 빠지지 않고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론, 실험, 수학 같은 과학의 대표적인 이미지들은 과학을 멋있게 보이게도 하지만, 딱딱하고 어렵고 재미없게 보이게도 만든다. 꽤 대단하지만 친해지고 싶지 않은, 답답한 모범생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제 과학을 그런 틀에서 벗어내고싶다. 과학이 우리 삶의 여러 측면과 맺는 아기자기한 관계들, 과학을 하는 각기 다른 이유들, 과학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다양한 반응들을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들여다봄으로써, 과학도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이고 그렇기에 인간들이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가 과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드러내 보인다. 돈, 인간관계, 폭넓은 상식, 뛰어난 재주,이해 관계, 국가적 이해 관게 및 국제 관계, 과학 연구 조직과 연구 기관들, 사회적 요구와 필요 등의 요소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는 융합의 필요성을 과학의 본래 모습이 갖는 바로 이런 특성에서 찾는다. 과학이 인간사의 일부분이고, 그 만큼이나 과학이 인간사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면, 과학자들은 그저 자신의 연구 분야에 몰두해서만은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려면 연구 문제부터 제대로 정해야 하는데, 이 일은 과학자의 연구 주제와 사회적 요구 및 필요 사이의 접점을 찾아 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원하는 연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과학자의 연구는 그저 스스로의 호기심만을 채우는 연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요구와 필요라는 것이 그저 사회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유용한 연구 또는 경제적 이득을 낳는 연구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런 것 외에도 종교, 사상, 정치, 역사, 계급 갈등, 국가 간 갈등 같은 여로 요소들이 사회적 필요와 요구를 만들어낸다. 문제 설정이 제대로 되면 그다음 단계에서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창조적 아이디어, 새로운 문제 풀이 방법, 능력 있는 협력자, 연구와 과학자의 생계에 필요한 돈 등 다양한 자원이 필요해진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이나 아이디어를 자신의 연구에 끌어들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과학 바깥에서 창의적 아이디어와 방법을 빌려 쓸 때도 있다. 여러 기관에 연구비를 신청하거나 때로는 부유한 후원자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연구비 지원을 받기 위해 설득력 있는 지원서를 쓰고, 후원자를 설득하고, 능력 있는 협력자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화하는 일들을 포함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그저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생각의 밑천이 될 지식 창고가 풍성하게 차 있을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지식창고를 채워야 할까? 전공 분야의 전문전 지식 뿐만 아니라 주변 분야의 새로운 소식들,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이 창고를 채워준다. 융합은 생각의 밑천을 담고 있는 이 지식창고를 조금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문제를 풀면 끝날까? 아니다. 해결한 문제의 의미와 진가를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전파하는 일이 남아 있다. 여기서 과학자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그저 말 잘하기, 글 잘쓰기 같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과학 연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부여한 의미가 다른 사회에서도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등등, 그 연구가 전달되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학 활동 자체가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와 능력을 요구하는 융합적인 활동이다. 과학을 알아야 융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 뿐만 아니라 인문학자 모두 좁은 우물 속에 갇혀버린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는 동아줄을 만들기 위해, 다른 분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면 과학자들이 하는 과학이라는 활동은 실험실에 콕 틀어박혀 하는 일이 아니다.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그저 실험 잘하고 문제 잘 풀면 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 활동 자체가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와 능력을 요구하는 융합적인 활동인 것이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본 후, 에술, 철학, 사상, 종교, 전쟁, 대중문화와 과학의 관계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또 사회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과학이 발현되는 모습들을 보고 구체적인 사회적, 역사적 조건 속에서 과학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어떤 모습을 드러내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과학의 모습을 더 잘 알게되고, 과학을 많이 좋아하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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