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체로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컴퓨터(정보과학), DNA(생명과학), 거울 뉴런(뇌과학), 나노기술 등 첨단분야의 연구 성과 등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과학적 이론과 기술적 응용이 합쳐진 분야에서 나온 성과물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이론이 과학을 대변했다. 오늘날에는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불분명해졌으며, 양측이 융합해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라고 불릴 만한 분야를 형성했다. 한편으로는 과학이라는 말에서 환경 파괴, 핵무기, 원자력 발전소 사고, 약물 부작용 등 과학 기술 때문에 발생한 수많은 재앙이 연상되기도 한다 .현대는 과학기술의 시대인 동시에 그로 인한 사회적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시대다. 장단점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든 간에 현대 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성과 없이는 성립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한 리스크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게 됐다. 지속가능성이 시대를 상징하는 표어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은 오늘날 사회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미여 국가와 기업이 바로 최대의 후원자다. 실제로 신문과 TV에서는 과학과 과학기술이라는 말을 하루도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학이라는 말 자체를 살펴보면 과에 관한 학문이라고만 읽힐 뿐이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막연하다. 물리학이라면 물체와 물질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풀어낼 수 있으며 생물학도 생물에 관한 학문이라는 식으로 뜻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과학이라는 말은 누구나 사용하지만 과가 뜻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여기에는 다소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데 먼저 그것부터 알아보자.
과학은 영어 사이언스 SCIENCE를 번역한 말이며 사이언스는 라틴어 스키엔티아SCIENTIA에서 유래한 말이다. 스키엔티아는 라틴어 동사 스키오SCIO의 명사형으로 지식과 앎이라는 뜻을 지닌 아주 일반적인 단어다. 예를들어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의 명언 Scientia est potentia는 아는 것이 힘이다로 번역된다.
이 스키엔티아가 영어 사이언스로 어형이 바뀐 후에도 처음에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신념이나 의견과 대비되는 지식이 라는 뜻을 지닌 단어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사이언스가 14세기 중반부터 알고있는 상태 또는 사실이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설명한다. 당시 사이언스는 오늘날의 과학이라는 뜻이 아니라 일반적인 지식과 학문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었다.
사이언스라는 단어가 지식중에서도 관찰과 실험 등 경험적인 방법으로 통해 실증된 법칙적 지식이라는 한정된 특수 지식, 다시 말해 과학을 의미하게 된 것은 18세기 초반부터다. 그 과정에서는 16~17세기에 걸쳐 일어난 과학혁명이라는 거대한 지적 변혁이 있었다. 이 과학혁명의 소용돌이 안에서 근대과학이 탄생한 것이다.
과학혁명 중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쓴 책인 리바이어던의 목차를 보면 추론과 과학에 관하여라는 장이 있다. 홉스는 그 장에서 과학은 여러 귀결과 하나의 사실이 다른 사실에 의존하는 관계에 관한 지식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바탕으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나 나중에 유사한 일을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라고 서술했다. 다시말해 과학이란 추론의 귀결에 관한 지식, 사건의 인과관계에 관한 지식이다. 특히 그가 과학을 행동을 예측하는데 유용한 지식이라고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과학적 지식이 획일성과 유용성을 지님을 시사한다.
알다시피 지식은 개수를 셀 수 없는 불가산명사이지만 사이언스라는 명사는 이 두가지 용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사이언스가 과학 지식을 뜻할대는 불가산명사가 되며 복수형이 없다. 반면 정밀 과학 exact science이나 응용 과학 applied science처럼 학문분야를 뜻할 때는 가산명사가 되며 복수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복수형인 사이언시스sciences는 다양한 학문 분야로 구성된 개별적인 여러 학문을 뜻한다.
과학지식이 점차 전문 분야별로 세분화돼 각각 독자적인 규율을 정립해가면서 사이언스는 복수형으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용법은 과학의 전문화와 분화가 시작된 19세기 초반 이후에 확립됐다. 예컨대 지질학 geology라는 단어는 18세기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생물학 biology이라는 단어는 트레비라누스와 라마르크가 19세기 초반에 만들어낸 말이다.
그 시기가 되어서야 사이언스는 현재의 자연과학을 뜻하는 말이 됐으며 복수형으로 쓰일 때는 개별적인 여러 학문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됐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가 쓰는 과학이라는 단어는 사이언스가 아니라 개별적인 여러 학문을 뜻하는 사이언시즈를 번역한 말이다.
유럽에서 과학은 원래 자연철학을 모태로 하여 생겨난 지식이 주를 이뤘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립, 기독교와 근대 과학 사이의 알력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 미신과 대치되는 계몽주의적 세계관과 밀접하게 결합해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과학을 기술과 결합한 실용적인 지식으로, 다시말해 세계관이나 자연관이 아니라 개별 분야의 전문 지식으로서 기술적인 응용에 중점을 두고 받아들였다. 현재도 일본 대학을 보면 이학부보다 공학부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서구에서는 1970년대에 한때 기초과학분야에 관한 일본 무임승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한 일본인의 과학관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사이언스의 번역어로 선택된 과학이라는 단어다.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2차 과학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과학자라는 전문 직업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제 과학자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보자.
과학자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갈리레이와 뉴턴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이유는 갇난하다. 그들이 살았던 17세기 유럽에서는 과학자에 해당하는 말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자연철학자였다. 실제로 갈릴레이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철학이라 불렀으며 뉴턴의 주요 저서는 프린키피아라고도 불리는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다 .그들이 활약한 시대에는 아직 과학의 전문화, 분화가 시작되지 않았으며 당시의 과학 연구는 넓은 의미로 보면 철학의 일부였다. 따라서 다소 기묘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17세기 과학혁명은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가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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