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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전문 지식

과학혁명 in 12세기

by 그로잉타임즈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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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운동과는 달리 외부에서 가한 힘때문에 일어나는 운동을 강제 운동이라고 한다. 수직 운동이라는 자연 경향에서 벗어나 전후좌우나 비스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이 바로 강제 운동이다. 강제 운동을 일으키는 외력은 물체끼리 접촉했을 대 생기는 밀거나 당기는 직접적인 작용뿐이다. 따라서 운동의 물리적 요인은 물체가 원래 지니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제외하면 접촉에 의한 근접 작용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운동속도는 물체에 가한 동력에 비례하며 매질의 저항에 반비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매질의 저항이 0일 때 즉 진공에서는 물체의 속도가 무한대이며 물체는 A지점과 B지점이라는 두가지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명백히 불합리하며 따라서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HORROR VACUI란 말이다. 또한 낙하운동이 일어날 때는 매질의 저항이 일정하므로 낙하 속도는 동력(물체의 무게)에 비례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가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한 실험(최근 연구에 따르면 허구였다고 한다)을 통해 이 주장을 반박했다는 대단히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천문학의 예에서 처럼 고대 운동록의 중심 원리를 제시하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자연 운동의 원인은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둘째 강제 운동의 원인은 접속에 의한 근접 작용이다. 셋째 물체의 속도는 동력에 비례하고 매질의 저항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문학과 마찬가지로 운동론에서도 중심 원리를 벗어나는 예외가 관측됐다. 한 가지는 투사체 운동이며 또 한가지는 낙하운동 가속도에 관한 문제다.

 

먼저 투사체 운동이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포탄이나 야구공처럼 물체가 포신이나 방망이 등과 직접적인 접촉을 마친 귀에도 한동안 운동을 지속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것은 강제 운동의 원인은 접촉에 의한 근접 작용이라는 2번째 원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현상이다. 이 문제의 해법으로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논한 순환적 떠밂 이론을 들 수 있다.

예를들어 방망이를 떠난 공은 주변 공기를 밀어내면서 날아가는데 이에 따라 공이 있었던 원래 장소의 공기는 희박해진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므로 밀려난 공기는 진공 상태가 된 장소에 빠르게 흘러들어 가며 이를 동력으로 삼아 공은 계속 앞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다. 이 공기에 의한 떠밂은 접촉에 의한 근접 작용이므로 운동론의 원리를 지키는 셈이다.

 

다음으로 낙하운동의 가속도란 물체가 자유낙하 할 때 점차 속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따르면 낙하속도는 무게(동력)에 비례하므로 무게가 일정하다면 속도도 일정해야 한다. 따라서 이 현상은 3번째 원리에 어긋난다. 이에 관해서는 물체가 낙하하면서 공기층이 옅어지므로 저항이 약해지면서 속도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향으로 향할 때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물체도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다가갈수록 자연적인 경행이 강해져서 속도가 빨라진다는 식으로 의인화한 설명도 있었다. 어쨌든 고대 운동론은 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이후와 확연히 달랐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우주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게였다.

 

중세에 들어서자 운동론은 뷔리당이라는 임페투스IMPETUS(기세)이론으로 진전을 보였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예외를 포함한 여러 난제는 결국 갈릴레이와 뉴턴이 중심 원리를 폐기하고 근대 물리학을 성립시킴으로써 겨우 해결됐다.

 


과학혁명1: 코스모스의 붕괴

12세기 르네상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은 2000년 가까이 유럽 사람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지배해왔다. 그토록 꾸준히 강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족으로 지고 돌은 깃텃보다 빠르게 낙하하는 등 일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현상을 천동설과 운동론이 잘 설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리스 우주론은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무너져 내렸고, 대신 근대과학의 방법론과 이에 기반을 둔 새로운 자연관이 성립됐다. 이것이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다만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이 중세 기독교 세계에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과학 지식을 유럽의 지적 전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고대와 중세 사이에는 커다란 단절이 존재했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나 아르키메데스의 역학 뿐만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등도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한 그시르 과학의 정수는 동방 비잔틴 제국을 통해 아랍으로 전해졌으며 그곳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나갔다. 아랍으로 전해진 그리스의 과학 지식이 이후 12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유럽으로 역수입됐다.

 

역사가인 찰스 해슼니스는 이러한 12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지적 혁신 운동을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불렀다. 르네상스란 재생, 즉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과 예술이 되살아났음을 뜻한다. 보통 르네상스라고 하면 14~16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 부흥 운동을 가리키지만 유럽에서는 이봅다 2세기나 앞서 학문 혁신 운동이 일어났다. 12세기 르네상스는 문학이나 예술이 아니라 학문(과학)부흥 운동이었으며 근대과학이 성립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2세기 르네상스의 또 한가지 특징은 이슬람 세계에서 서구로 새로운 지식이 전해졌다는 점이다. 과학사학자인 이토 슌타로는 이를 문명조우와 문명전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서구가 지적 패권을 확립해나갔다는 의미에서 12세기야말로 서구가 지적으로 이룩한 시대였다고 평했다. 12세기 르네상스는 스페인의 톨레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치아와 피사 등을 거점으로 한 번역 운동의 형태로 시작됐다.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과학, 철학 문학을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그 배경에는 당시 유럽에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는 지식인이 매우 적었다는 사정이 있었다.

 

12세기에 일어난 일대 번역 운동을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의 수학이 유럽 세계로 다시 전해졌다. 12세기 르네상스에서는 그리스 과학뿐만 아니라 당시 절정에 달했던 아랍의 과학 지식도 유럽에 전해졌다. 아랍의 과학이라고 하면 우리와는 무관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지금도 그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우리가 늘 사용하는 아라비아숫자가 대표적이고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서구로 전해진 위치기수법(일의 자리든 십의 자리든 자릿수와 관계 없이 같은 기호를 쓰는 방법)도 있다. 로마숫자로 사칙연산을 한다면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이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대단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계 문자판, 각도단위에 쓰이는 60진법도 아랍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수학과 알고리즘등의 수학용어, 알코올, 알칼리, 알데하이드 등의 화학 용어도 아랍어의 정관사  al이 앞에 붙어있다. 이를 통해 아랍에서 유래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아랍 과학의 유산은 현대과학 지식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중세 아랍에서 발달한 철학적이면서도 영적인 학문으로서의 연금술은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나 마술에 가깝다 .고대로부터 약 2000년 이상 신봉했던 원소 변환설을 근거로 값싼 철이나 납 같은 금속을 비싼 금으로 바꾸려고 했다.

 

아랍과학은 수학, 천문학, 자연학 분야에서 그리스 과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와 함ㅁ께 연금술과 의학 등 실용적인 분야에서 독자적인 학문을 형성했으며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다. 특히 아랍 연금술로 대표되는 실험 기법은 13세기에 로저 베이컨이 실험과학을 제창하면서 유럽 학문에 깊이 뿌리박혔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논증정신이 그리스 과학의 특징이라면 연금술로 대표되는 실험정신은 아랍 과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증 정신과 실험 정신이 아랍에서 유럽으로 넘어가 독자적인 결합을 이룸으로써 근대과학의 방법론이 확립됐다. 그런 의미에서 12세기 르네상스는 근대과학이 성립하는데 모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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