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는 1차 성질과 2차 성질을 구분함으로써 물체의 자연 본성에 기반을 둔 질적 공간 대신 수학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균일한 양적 공간을 주장했다. 갈릴레이는 물체가 가지는 여러 성질 중 모양, 개수, 운동, 대소, 시공간상의 위치등을 1차 성질이라 불렀으며, 이를 물체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실재적 성질이라 생각했다. 이에 비해 물체의 색, 소리, 맛, 냄새 등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겉보기 성질이라 생각해, 이를 2차 성질이라 불렀다. 갈릴레이는 우리 내면에 맛, 냄새, 소리를 만들어내기 윙해 외부 물체의 크기, 모양, 개수, 느리고 빠른 운동 외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귀, 혀, 코를 잘라내더라도 형태, 숫자, 운동은 분명히 남겠지만 냄새, 맛, 소리는 전혀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1차 성질은 감각기관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성질인 데 비해 2차 성질은 감각기관과 함께 생겨나고 사라지는 주관적 성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갈릴레이는 이 구분을 바탕으로 자연계를 구성하는 실재적 성질은 정략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1차 성질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수치화할 수 없는 정성적인 2차 성질은 자연인식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와 유사하게 데카르트도 물체의 본성은 길이, 폭, 깊이 등으로 구성된 연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감각적인 성질을 배제함으로써 질적 차이를 지니지 않는 공허한 공간 속을 색, 소리, 맛, 냄새를 지니지 않는 물체가 수학적 법칙에 따라 운동한다는 근대과학적 자연관이 성립했다. 그 후의 과학사는 색과 소리 등 정성적인 2차 성질을 하나둘씩 측정 가능한 물리량으로 만들어서 수학의 언어로 번역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상학의 창시사 후설Edmund Husserl은 이러한 자연관의 전환을 갈릴레이에 의한 자연의 수학화라고 불렀다. 후설은 우리 인간이 사는 세계를 2차 성질과 심적 술어(기쁘다, 슬프다, 아프다 등)로 채색된 감각과 감정이 가득한 생활세계로 봤다. 객관적인 1차 성질 간의 수량 관계만을 고찰하는 물리학으로는 이 생활 세계의 전모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후설은 갈릴레이에 관해 물리학과 물리적 자연의 발견자 갈릴레이는 천재적인 발견자와 동시에 천재적인 은폐자이기도 했다라고 평했다. 갈릴레이는 진자의 등시성과 낙하 법칙을 발견한 천재임과 동시에 생생한 직접 경험으이 세게, 다시말해 생활 세게를 수식의 옷으로 감써서 숨겨버렸다는 뜻이다.
물론 자연과학의 고찰 대상이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1차 성질의 영역으로 한정되는 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로 인해 과학 이론이 더욱 정밀해졌으며 수많은 기술적 성과를 이뤄왔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수학적 자연과학이 기술하는 물리적 세계야말로 진정한 객관적 실재이며 감각과 감정으로 가득한 생활 세계를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부산물이라고 생각한 점을 후설은 앞뒤가 뒤바뀌었다고 비판했다.
후설은 생활 세계가 인식에 앞서 미리 주어져 있는 감각적 경험의 세계이며 과학적 인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바탕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과학적 지식이 지니는 객과성과 보편적인 타당성 또한 과학 이전에 존재하는 생활세계적인 경험의 명증성에 뿌리를 내려 이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숨기고 망각시켰다는 의미에서 갈릴레이는 생활세계를 은폐한 천재였다고 한 것이다.
2. 갈릴레이 운동론: 논증과 실험
과학혁명의 제2막은 갈릴레이가 지상에 존재하는 물체의 운동을 수량적으로 정형화한 일, 다시 말해 운동론의 변혁으로 시작됐다. 여기서는 천재적인 발견자인 갈릴레이의 업적에 주목해보자.
갈릴레이라고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피사의 사탑에서 행한 공개 실험일 것이다. 그는 무거운 금속 공과 가벼운 금속 공을 사탑 꼭대기에서 동시에 떨어뜨렸을 때 두 공이 동시에 땅에 닿는다는 사실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낙하 속도는 무게에 비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을 반증falsification했다고 전해진다. 이 실험 자체는 실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이라고 하는 등 신빙성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갈릴레이는 신과의 대화에서 그와 유사한 의의를 지니는 사고 실험을 언급했다. 그는 먼저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낙하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가정한 다음 거기서 모순을 끌어냄으로써 귀리법(배리법이라고도 한다. 어떤 전제에서 논리적인 모순이 발생함을 보임으로써 그 전제가 잘못됐음을 보이는 간접 증명법)을 이용해 최초 가정이 잘못됐음을 증명했다.

가령 무거운 물체가 8이라는 속도로 낙하하고 가벼운 물체가 4라는 속도로 낙하한다고 가정하자. 이제 이 두 물체를 묶어서 낙하시켜 보자. 그럼 달리기가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이 손을 잡고 달릴 때처럼 무거운 물체는 속도가 줄고 가벼운 물체는 속도가 증가하므로 묶여있는 두 공은 4보다 크고 8보다 작은 속도로 낙하할 것이다. 그런에 묶여 있는 두 물체는 무게의 총합이 12이므로 8짜리 공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낙하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참이라고 하면 이와 같은 모순이 생기고 만다. 이런 식으로 낙하 속도는 물체의 무게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사고 실험의 형태로 논증했다.
갈릴레이는 그러한 논증뿐만 아니라 실험을 통해서도 낙하 속도가 무게도 거리도 아닌 시간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수량으로 확인하려 했다. 자유낙하 하는 물체의 속도는 매우 빠르므로 직접 측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극는 중력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긴 나무토막에 홈을 파고 경사면을 만든 다음, 그 홈에 청동으로 만든 공을 굴려 통과한 거리를 측정하고 물시계를 이용해 공이 굴러 내려가는 시간을 계측했다. 즉 낙하 속도와 시간의 관계를 측정하는 대신 통과 거리와 시간의 관계를 측정한 것이다. 이 경사면 실험을 반복한 결과 갈릴레이는 진공에서는 모든 물체가 똑같은 속도로 낙하한다(제1법칙)와 자유낙하하는 물체의 낙하 속도는 낙하 시간에 비례하며 낙하 거리는 낙하 시간의 제곱에 비례한다(제2법칙)라는 낙하의 법칙을 발견했다. 바로 근대 실험과학이 성립된 순간이었다.
'과학 전문 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뉴턴, 하늘과 땅을 통일하다? (0) | 2023.03.06 |
|---|---|
| 코페르니쿠스 원운동 (0) | 2023.03.06 |
| 코페르니쿠스, 우주론의 전환을 이야기하다 (1) | 2023.03.04 |
| 과학혁명 in 12세기 (0) | 2023.03.04 |
|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 (0) | 2023.03.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