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천문학의 중심 원릴는 케플러에 의해, 고대 운동론의 중심 원리는 갈릴레이에 의해 완벽히 파괴되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하나의 법칙으로 통일하는 일이었다. 이 '하늘과 땅의 통일'이라는 커다란 과제는 갈릴레이가 세상을 더난 해(1642)에 태어난 뉴턴에 의해 해결됐다. 뉴턴의 등장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과학혁명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뉴턴은 갈릴레이의 '실험 철학', 다시 말해 논증과 실험의 결합이라는 노선을 이어받아서 수학적 자연과학 체계를 완성했다. 이를 집대성한 것이 뉴턴의 유명한 저서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다. 근대과학이 이룬 최고의 결과물이라 불리는 이 책은 총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클리가 지은 <원론>의 서술 방식과 유사하게 처음에는 정의와 공리를 나열하고, 이를 기초명제로 삼아 차례차례 정리(명제)를 증명해나가는 방식으로 쓰여있다.
이 책에서는 '공리 또는 운동의 법칙'으로 첫째 관성의 법칙, 둘째 운동의 법칙, 셋째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세 가지 명제를 들고 있다. <프린키피아> 제 1평 '물체의 운동에 관하여'에서는 이러한 법칙을 이용해 '명제 11'에서 타원궤도를 그리며 회전하는 물체가 타원의 초점을 향하는 구심력(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역제곱의 법칙)을 논증했다. '명제 15'에서는 케플러의 제 3법칙(조화의 법칙)을 유도했다. 또한 '명제 65'에서는 역제곱의 법칙을 바탕으로 케플러 제1법칙(타원궤도의 법칙)과 제2법칙(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을 끌어낼 수 있음을 보였다. 다시 말해 인력에 관한 역제곱의 법칙을 바탕으로 케플러가 해명한 행성 운동을 모두 통일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인력이 '만유인력'이려면 역제곱의 법칙은 천체뿐만 아니라 지상의 물체를 포함한 온갖 물체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뉴턴은 이를 제 3편 '세계의 체계에 관하여'에서 '명제7: 중력은 온갖 물체에 존재할 것이며 각 물체가 지니는 물질의 양에 비례한다'라는 형태로 선언했다. 이어지는 '명제 8'에서는 그 중력이 두가지 물체의 중심 간 거리의 제곱에 반비레함을 명확히 보였다. 따라서 만유인력의 법칙은 질량이 각각 M과 m인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은 질량의 곱 Mm에 비례하며, 두 물체의 중심 간 거리인 r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만유인력의 발견에 관한 아주 유명한 전설이 있다. 뉴턴이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한 1665년부터 이듬해깍지 페스트가 유행했기에 대학이 폐쇄됐다. 그래서 뉴턴은 고향인 울즈소프로 돌아가 그곳에서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 그늘에 앉아서 묵상하고 있을 때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생각해냈다' 라고 한다. 이 전설은 뉴턴이 늘그막에 나이 어린 친구에게 해준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진위는 알 수 없다. 다만 뉴턴이 사과가 낙하하는 현상이 달이 회전하는 현상이 모두 만유인력에 의한 일이라 생각한 것은 확실하다.
가령 지금 후지 산 꼭대기에 서서 손에 든 사과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사과는 낙하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사과를 수평방향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고 해보자. 그러면 사과는 포물선을 그리며 산 기슭에 떨어질 것이다. 점차 더 빠른 속도로 던지다보면 사과는 점점 더 멀리까지 날아갈 것이다. 도쿄, 호놀룰루, 뉴욕을 거쳐 마침내 지구 반대편에 다다를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공기저항이 있으므로 사과를 인공위성으로 만들려면 지상에서 200km지점까지, 다시 말해 저항이 적은 고도까지 로켓을 이용해 옮겨주어야 한다. 만약 사과를 달과 똑같은 높이까지 쏴 올린다면, 그 사과는 달과 함께 지구 주변을 회전 할 것이다. 인공위성이 되기는 했지만, 사과는 여전히 지구의 중력에 끌려 낙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과가 나무에서 땅으로 낙하한다는 지상의 운동과 달이 지구 주변을 회전하는 천상의 운동을 모두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에서는 천상와 지상이 물질의 구성성분부터 다르며 서로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는데, 뉴턴에 의해 하늘과 땅이 통일된 것이다.
만유인력의 눈여겨볼만한 특징은 거리가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원격 작용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강제 운동의 원인을 물체의 접촉(밀기, 끌기)에 의한 근접 작용에서 찾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록 원리가 폐기됐음을 뜻한다. 하지만 데카르트파 기계론 철학자가 보기에 원격 작용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신비주의(오컬트)적 성질'을 인정하는 중세 마술의 전통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에서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칭찬하기 보다는 비판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뉴턴은 시간과 공간을 '신의 감각중추'라고 불럿으며 <프린키피아>집필 중에도 연금술과 성서를 연구에 몰두하는 등 신비주의적인 일면도 있었다. 뉴턴의 연금술 관련 유고를 입수한 경제학자 케인스가 뉴턴을 '최후의 마술사'라고 평했을 정도다. 물론 뉴턴이 과학혁명을 완성한 '근대과학의 창시자'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뉴턴은 현대과학의 과학자상에서 크게 벗어는 '최후의 르네상스인'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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