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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전문 지식

코페르니쿠스 원운동

by 그로잉타임즈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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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도 벗어나지 못했던 일관된 원운동와 천구의 존재라는 두 가지 원리를 폐기하고 근대 천문학의 길을 연 사람은 바로 요하네스 케플러였다. 케플러는 튀빙겐 대학교에서 메스틀린에게 천문학을 배웠으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매료됐다. 이때 케플러는 태양을 최고의 존재로 여기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600년대에 케플러는 프라하의 튀코 브라헤를 찾아가 그의 조수가 됐다. 이 만남은 케플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당시 브라헤는 육안에 의한 천체 관측에서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천문학자였으며, 그 정밀한 관측 데이터가 훗날 케플러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만 브라헤 본인은 이론에 대해 보수적이었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와 코페르니쿠스 체계의 절충안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튀코 브라헤가 세상을 떠난 후 케플러는 그가 남긴 방대한 관측 데이터를 물려받아 화성 궤도를 확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케플러는 먼저 지구의 잉심원 궤도를 정확하게 구해서 특정 시각에 지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내려했다. 이를 통해 케플러는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에 도달했다. 이는 태양과 행성을 연결하는 선분이 같은 시간 쓸고 지나가는 면적은 항상 같다는 법칙이며, 케플러의 제2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이 단계에서 케플러는 지구의 궤도가 당연히 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운동의 일관성이라는 원리는 이미 이 법칙에 의해 폐기됐다고 볼 수 있다.

그 후에 케플러는 다시 화성 궤도를 결정하는 본래 문제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론적인 예측값과 브라헤의 관측 데이터 사이에는 각도가 따로 지면 8분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케플러는 이를 관측오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6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다. 이 6년은 케플러가 원의 마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전고투한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케플러는 화성 궤도를 원에 가까운 난원형(달걀처럼 한쪽이 갸름하게 둥근 모양)이라고 생각했으며 여기에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을 적용하려 했다. 하지만 난원형의 넓이는 무척 계산하기 어려웠기에 그는 수학적인 근사값을 구하기 위해 타원형 궤도를 채용했다. 그 결과 관측값과 이론값이 완전히 일치했다. 이것이 바로 행성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린다는 타원궤도의 법칙(케플러의 제1법칙)이다. 덧붙이자면 이 타원궤도의 또 다른 초점은 코페르니쿠스가 기교적이라고 비판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동시심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케플러는 신천문학에서 제1법칙과 제2법칙을 발표했는데, 이는 일관된 원운동이라는 원리를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천문학의 문을 연 사건이었다.

 

하지만 케플러가 보기에 원의 마력에서 해방된 우주는 조화와 질서를 잃은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는 숨겨진 우주의 질서를 끊임없이 찾아 헤맸다. 마침내 세계의 조화에서 조화의 법칙(케플러 제3법칙)을 발표했다. 이는 행성의 공전 주기 제곱은 태양과 행성의 평균 거리 세제곱에 비레한다는 법칙이다. 케플러는 이 법칙이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태양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며, 태양중심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생각했다. 이 법칙은 두 행성의 공전주기가 각각 T1, T2이고 태양과의 평균 거리가 D1, D2일 때 (T1/T2)^2=(D1/D1)^3라는 뜻이다. 케플러는 우주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학적진 질서가 존재한다고 굳게 확신했다. 다만 그 확신은 과학적 신념이라기보다는 신플라톤주의에 바탕을 둔 신비주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케플러는 틀림없이 르네상스인이었다.

 

그러한 케플러의 신비주의적인 측면은 움직이게 하는 영혼ANIMA MOTRIX라는 개념에도 나타나있다. 이것은 태양에서 유출되어 행성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운동력을 뜻하며, 그 힘은 태양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개념은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지우고 보면 훗날 발견된 만유인력과 유사한 것이었다. 실제로 길버트의 자석에 관하여에서 영향을 받은 케플러는 움직잉게 하는 영혼이 자기력이라고 해석했다 .오늘날 우리가 중력으로 알고 있는 힘을 자기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요약하면 케플러는 일관된 원운동이라는 견고한 원리를 파괴함과 동시에 행성이 운동하는 원인이 천구의 회전이라고 설명했던 기존 이론을 부정하고, 다소 신비주의적이긴 하지만 물리적 작용 때문에 천체의 운동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는 특별히 강조할 만한 사건이다. 왜냐면 이 일을 계기로 천문학은 기존 천체의 기하학에서 벗어나 천체의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학혁명: 자연의 수학화

 

1. 우주라는 책

과학혁명의 제1막은 코페르니쿠스에 의한 천문학혁명, 다시 말해 천동설(지구중심설)에서 지동설(태양중심설)로 전환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천체(천상의 물체) 운행에 관한 기존 설명체계를 뿌리부터 뒤흔든 사건이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여전히 집착했던 '일관된 원운동'을 포함한 고대 천문학의 모든 원리를 폐기한 것은 바로 케플러였다. 또한 케플러는 천체 운동을 물리적인 힘으로 설명하려 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지상에 있는 물체의 운동에 관하여서는 중세 말기에 뷔리당 등이 임페투스 이론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이는 물쳉츼 본성에 따른 자연 운동의 개념에 근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이었다. 임페투스(기세)란 물체의 질량과 속도에 비례하는 운동의 일종이며 이것이 운동하는 물체 안으로 흘러들어가면 투사체 운동이나 자유낙하 때 일어나는 가속도 운동 등에서 변칙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진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임페투스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존재론을 전제로 했다는 점으로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이론이었다.

 

진정한 의미로 근대 역학의 기초를 쌓은 사람이 갈릴레이였다. 갈릴레이는 운동론을 혁신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질적 자연관에서 양적 자연관으로 전환하기 위해 갈릴레이가 내디딘 결정적인 첫걸음을 그의 저서인 분석자The assayer의 한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철학은 눈앞에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이 가장 커다란 책(우주)에 쓰여있다. 하지만 먼저 언어를 이해해 거기 쓰여 있는 문자를 해독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읽지 못한다. 그 책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있고 문자는 삼각형, 원, 기타 기하학 도형이며, 이러한 수단이 없다면 인간의 힘으로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 없이는 어두운 미궁을 허무하게 헤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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